4차 산업혁명은 그 실체에 관한 논쟁에서부터 그 의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 역시 광활합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미디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탐색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같은 특정 기술 수준으로 끌어내리면 상상이 시작될 수 있지요.
IoT, 데이터에 맥락을 부여하다
일단 IoT는 연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시장의 진화는 빠진 연결고리를 메우는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상파가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을 유선망인 케이블이 해소했고, 케이블과 지상파의 음영지역을 위성이 커버했으며, 인터넷은 연결범위를 확장했습니다. 연결범위가 확장되면서 미디어는 지역(Local) 서비스에서 지방(Regional) 서비스로, 전국 서비스로 확장됐고, 이어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됐습니다.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정된 전화에서 무선전화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하던 세상이 모바일을 만나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SNS 의 시대가 개화했습니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던 사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게 사물인터넷(IoT)입니다.
그런데 연결은 단순한 연결,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연결되면 될수록 눈에 보이지 않던 금맥을 하나둘씩 발견하게 됐습니다. 바로 데이터입니다.
PC시대에는 익스플로러로 접속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상공간이지만, 사람들이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고 무엇을 하는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과 연결되지 못한 독립적인 사이버 공간이기는 해도, 그 공간의 데이터로 먹고사는 기업이 하나둘씩 등장했습니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그랬습니다.
상상으로 메워야 했던 정보를 현실세계로
사이버 공간의 자료는 오프라인에서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주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행지를 검색하는 이들은 사이버 공간에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데이터와 데이터를 가공한 정보가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데이터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들은 좀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 관해 아주 조금만 더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빅데이터에 대한 갈망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사물인터넷(IoT)은 바로 이 지점을 채워줍니다. 채워지지 않은 데이터, 그래서 현실이 아니라, 상상으로 메워야 했던 정보를 현실세계로 끌어내립니다. 물리적 시간과 공간이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결합되고, 그 연결의 의미에 사물 등이 더해지면서, 이전에는 나조차 몰랐던 실체적 진실을 가진 데이터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은 이런 상황을 포괄적으로 포용합니다. 현재도 우리는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등에서 수집되는 정보의양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미국국회도서관을 가득 채운 장서의 정보량은 페이스북이 생성하는 하루 정보량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IoT로 사물의 정보가 더해집니다. 바로 콘텍스트(Context)의 출현입니다. 사물인터넷(IoT)을 가능하게 하는 센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실체화하는 정보를 만들어냅니다.
이전까지 이용자는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성향과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심리적 관계를 콘텐츠와의 관계 속에서만 풀어내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실체적 정확성을 떨어졌습니다. 동일한 음악을 듣더라도 비오는 날 듣는 음악과 화창한 날 듣는 음악은 맥락이 다릅니다. 이전에는 특정 음악을 들은 횟수로 나의 선호를 평가했다면, 이제는 날씨정보 등과 결합해서 나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 볼륨을 키우는 음악과 볼륨을 줄이는 음악도 구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IoT는 이용자를 콘텍스트의 맥락에 올려놓고 더욱 다차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콘텍스트가 연결되면 정보의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예전에는 하나의 실체를 재현하는 정보가 한두 개였다면, 이제는 수천수만 개로 나누어집니다. 나와 미디어 콘텐츠 간의 관계에서 확장되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로 정보가 분절됩니다. 그리고 전에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나와 다른 사람의 상호작용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개별정보가 합쳐지고, 쪼개지고 다시 붙여지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면 숫자에 숨은 이용자의 감정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문제는 이렇게 연결된 정보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느냐입니다. 이를 읽지 못한다면 정보는 쌓이기만 할 뿐 의미를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 연결된 정보를 상업화하고,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내는 일은 IoT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AI가 등장합니다.
AI, 데이터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다
AI는 파편화된 정보를 구조화합니다. 지금도 완전한 의미의 AI는 아니지만, 알고리즘 등이 이러한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두뇌와 물리적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분석을 해줍니다. 이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증권시장입니다. 개인과 알고리즘 기반의 로봇은 처리 가능한 주식의 물리적 거래 횟수에서 서로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차익거래 시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거래를 성사시킬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초단타 매매(HFT)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입니다. 2007년 미국의 5위 증권사였던 베어스턴스가 장내 거래(Floor Trade)를 자동주식거래 시스템으로 대체하면서 시작된 이 시장은 2010년 총거래의 75% 수준으로 늘어났고, 2015년에는 90%를 넘어섰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분석 능력 때문입니다.
인간은 정보를 취득하는 순간부터 판단하지만, 로봇은 정보가 생성되는 시점부터 분석을 시작합니다. 그 10억분의 1의 차이를 알고리즘은 인지합니다. 정보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판단의 수준과 속도가 중요한 IoT(사물인터넷)에 AI는 필수 요소입니다.
비단 여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AI는 데이터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데이터를 식별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영상 소스에서 자동으로 데이터를 추출하는 기술을 수년간 연구 중입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데이터는 텍스트 기반입니다. 텍스트 태깅이 없다면 내가 다녀온 여행 정보는 그 자체로는 검색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특정 사진에서 그날의 날씨와 그곳의 지명 등을 읽어낼 수 있다면 사진 자체가 하나의 정보와 데이터로 새롭게 탄생하는 셈입니다. 이런 기술이 진화하면 동영상 등에서도 수 억개의 새로운 데이터와 정보가 탄생해 의미를 더하게 됩니다.
이런 데이터 추출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니, 인간이 할 수는 있으나 여기에 들어가는 물리적 비용을 감안하면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AI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과 초(秒)당 실행 능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입니다. IoT로 새롭게 확보되는 데이터와 정보뿐만 아니라, AI가 스스로 창조하는 정보와 데이터까지 읽고 해석합니다. 그에 더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 중에서 정말 쓸만한 정보와 데이터를 골라주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면, 그 세상은 정보 과잉의 폐해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IoT와 AI, 생산과 소비의 온디멘드를 완성하다
현재의 알고리즘에 콘텍스트란 개념 하나만 들어가도 적용되는 값과 나오는 값이 현격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콘텐츠를 쪼개서 제공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 처음만 보는 사람, 끝만 보는 사람, 중간만 보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들이 이런 선택적 행위를 하는 것은 상황의 맥락이 달라서일 수 있습니다.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 보는 사람과 가벼운 화제가 필요해서 보는 사람은 서로 맥락이 다릅니다. 드라마를 보고 싶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이라이트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정보를 취득할 수 없었지만,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기제와 해석할 수 있는 AI가 존대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네비게이션을 켜고 10분 거리에 있는 장소로 가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찾습니다. 그 정보는 콘텐츠 제공자에게도 핵심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10분간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데, 30분짜리 콘텐츠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 DB를 넓히고 메타데이터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용자가 자율주행자동차에 있는지, 에코에 있는지, 강의실에 있는지 파악해서 최적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를 놓고 혁명처럼, 천지개벽처럼 떠드는 것은 뭔가 맞지 않습니다. 이건 진화이지 혁명이 아닙니다.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연결망이 인터넷을 껴안으면서, 그리고 넷스케이프 등의 새로운 언어인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분절적이고 고립된 컴퓨터는 인식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보낼 수 있는 망이 구비되면서 사실상 온디멘드가 시작됨 셈입니다.
온디멘드 생산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이 온디멘드는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도 소비되지 못한 것을 제공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온디멘드는 유통의 언어지, 생산의 언어는 아닌 셈이죠. 그러나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고, 다시 생산과 연결되면서 이 시장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온디멘드 생산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있는 것을 최적의 유통 구조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온디멘드에서 소비자의 요구를 이해함으로써 이에 걸맞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온디멘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봇 저널리즘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매일 시시각각 제공되는 증권 정보가 모두 기사로 재구성되지는 않습니다. 기자라는 물리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리적 비용이 들지 않고, 24시간 활동이 가능한 AI는 모든 증권 정보를 기사화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소외되었던 중・소형주에게 관한 세세한 정보까지도 가공해서 그 종목을 거래하는 사람에게 직접 기사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극소 시장의 소수 요구까지 맞출 수 있는 생산 기반 온디멘드의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이 IoT와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미디어의 세상입니다.
[출처: SK경영경제연구소]